중심적 지위를 차지하게 된 패러디
패러디는 문학, 영화의 역사에서 단지 주변적인 하위 장르가 아니고, 텍스트의 내재적 과정을 드러나게 해주는 경향이라고 볼 수 있다. 관례적인 영화연구에선 키튼보다 그리피스를, 베르토프보다는 푸도프킨, 뮤지컬 코미디보다 진지한 드라마 우선했다. 하지만 바흐친의 연구는 영화사의 연구 내에서 어느 정도 수정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 수정이란 패러디가 지속적으로 풍부함을 유지해왔고 또한 유형적 중요성을 지녀 왔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패러디는 진부해진 문학적 혹은 영화적 도식의 폐허 위에 스스로를 건설한다.
예술가 스스로가 예술적 관습을 능가한다고 인식할 때 패러디가 생겨난다고 주장될 수도 있다. 인간은 과거부터 이탈할 준비가 되었을 때 과거를 패러디한다고 헤겔은 시사했다. 예술형식이 역사적으로 부적절한 것이 되었을 때, 그것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 바로 패러디다. 패러디는 예술의 역사성과 우발성, 그리고 과도기적 성격을 강조한다. 패러디는 예술 과정의 재역사화를 끊임없이 수행한다. 새로운 소설 및 영화 형식이 권력과 존경을 얻기 위해 투쟁할 때, 종종 그것들은 패러디를 무기로 싸운다. (p195-197)
돈키호테적 주제
돈키호테적인 주인공이란, 현실 왜곡적인 영화(문학)의 시각을 통해 일상 경험을 바라보는 이를 말한다. 문학과 영화는 패러디를 통해 이를 조롱한다. <적과 흑>, <환멸>, <보바리 부인>에선 독서를 통해 품은 환상이 현실 세계의 경험에 의해 체계적으로 무너진다. 고다르 영화의 많은 등장인물들은 영화를 모델로 삶을 바라본다. <국외자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할리우드 영화 및 프랑스 범죄 영화의 갱들을 모방하는 파리 갱들) 돈키호테적이다. 그들의 삶은 대중문화 텍스트가 뒤범벅된 허구에 의해 끊임없이 영향을 받는다. 징후적으로, 그들의 첫 절도 품목은 돈이 아니라 텍스트다. 책을 훔치면서 스스로의 모습을 거울 속에서 바라보는 프란츠의 행동은 고다르 영화를 간략하게 요약한다. 즉 위협적이고 현학적이며 자의식적이다.
<미치광이 피에로>로 마찬가지다. 페르디낭이 <위대한 사기꾼>이 상영 중인 영화관에 간다. 그가 극장을 들어설 때, 상영 중인 영화 속 영화에서 진 세버그가 질문을 던진다. 아마도 관객들은 <네 멋대로 해라>에서 세버그가 벨몽도의 상대역을 맡았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므로 또 하나의 차원이 부가된다. 어떤 배우가 여러 역을 구현하고 있을 때, 어느 역이 ‘허구적’ 등장인물을 나태나며 어느 역이 ‘실제’ 등장인물이란 말인가?
<돈키호테>의 역설은 환영을 쫓아 버리면서도 마법을 거는 데 있다. 예술가 내부는 환영을 만들어내려는 의지와 그 환영을 깨뜨리려는 의도적 결 사이에 갈등이 일어난다. 한편 독자나 관객에게 있어서 자기반영적 방식들이 정서적 차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햄릿>은 자의식을 드러내지만, 관객들은 햄릿이라는 극중 인물과 동일시해왔기 때문이다. (p197-200)
내러티브상의 자기반영적 전략들
자의식적 소설과 영화는 내러티브 및 수사학적 전략들에 있어 비슷하다. 이 두 매체에 공통되는 전략은 환영적 내러티브 중심 가정에 회의를 나타내는 것인데, 그 가정이란 바탕이 되는 일화들이 이미 존재해서 그것들로부터 중요한 것들을 추출하여 내러티브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환영주의는 이야기되기 전에 이미 스토리가 존재하며, 스토리의 사건들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기 때문에 진리처럼 조사 가능하고 검증 가능한 것처럼 시치미를 뗀다.
반환영적 소설가들은 다락에서 발견한 편지들을 단지 편집하는 척 가장하는 디포 같은 작가들의 다큐멘터리적 전략을 패러디한다. 이미 존재하는 이야기를 예술적으로 취사선택한다는 가정은 내러티브상의 속임수이다. 등장인물의 생각을 추측해 본다는 것은 그 인물이 책 밖에서도 어느 정도의 존재를 누리며, 소설 속 그 이상의 인물이라는 환영을 품게 한다. 이 기법은 영화에 있어서의 화면 밖 공간의 활용을 떠올린다. 즉 화면에서 보이는 대유법적 부분들이 프레임 너머로 뻗어 있는 연속체에 대한 환영을 생각하는 것이다.
반환영주의 예술가들은 그들의 내러티브 마술을 일부러 서투르게 수행하여, 우리로 하여금 숨겨 둔 카드나 보이지 않는 실을 눈치 채도록 만든다. (p20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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