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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방송 이론 및 비평/영화의 이해

다큐멘터리 영화의 유형 : 시적, 설명적, 관찰자적 양식

다큐멘터리에서 목소리의 유형

모든 다큐멘터리는 자신만의 특정한 목소리를 갖고 있다. 개인의 목소리는 영화에 있어 작가 이론에 속하는 반면, 여러 사람에 의해 공유되는 공동의 목소리는 장르 이론에 속한다.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는 다큐 영화 장르 자체의 하위 장르처럼 기능하는 여섯 가지 재현 양식을 구분할 수 있는데, 시적 양식, 설명적 양식, 참여적 양식, 관찰자적 양식, 성찰적 양식, 수행적 양식이 그것이다.


다큐멘터리의 각 재현 양식은 그 이전의 양식에 대한 불만으로 등장하게 된 부분이 있다. 그렇기에 양식은 다큐멘터리 역사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한다. 새로운 양식이 영화 예술을 진보시키고 이전에는 절대 가능하지 않았던 세계의 측면을 포착해낸다는 모든 주장에 대해서는 그 과장을 감안하고 받아들이자. 변한 것은 재현하는 양식이지 재현이 지닌 궁극적 위치나 속성이 아니다. 새로운 양식이 다르다고 해서 그만큼 더 훌륭한 것은 아니다. 결국 새로운 양식은 또 다른 재현 양식이 극복하고자 하는 한계를 지닌 것으로 쉽게 공격받게 될 것이다. 새로운 양식이 나타내는 것은, 영화를 구성하는 새로운 지배적 방식, 현실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 그리고 관객의 마음을 선취하는 새로운 쟁점과 욕망이다.

 

시적 양식 (poetic mode)

시적 양식은 연속 편집이라는 관습과 구체적인 현장감을 버리고, 시간적 리듬과 공간적 병치가 이루어지는 패턴 및 연결을 탐구한다. 사람들은 심리적 복합성과 고정된 세계관을 지닌 순수한 캐릭터의 형태를 띠지 않는다. 더 나아가 사람들은 제작자가 취한 결합방식과 패턴에 맞게 선택되고 배치되는 원재료로서 기능한다. 시적 양식에서는 설득의 행위나 지식의 전시보다는 분위기나 톤, 정서적 감흥이 훨씬 강조된다. 수사적 요소의 개발은 덜 이루어지는 것이다.


시적 양식은 일련의 단편들, 주관적인 인상, 비연속적 행위 및 느슨한 연결 관계로 현실을 재현하는 한 방법으로서 모더니즘과 함께 나란히 시작되었다. 시적 양식이 지닌 이러한 특징은 일반적으로는 산업화로 인한 변화에 귀속되며, 특히 1차 세계대전의 영향에 속한다. 모더니즘 작품은 전통적인 내러티브나 사실주의적 용어로는 더 이상 이해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시공간을 복수의 시점으로 쪼개거나 무의식의 분출에 노출되어 있는 인성의 일관성을 부정하고, 극복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해답 제시를 거부하는 등의 특징은 결과적으로 혼란스럽고 모호한 예술작품을 만들어냈지만 그 자체의 정직한 느낌은 지니고 있었다. 몇몇 영화가 질서, 총체성, 통일성의 원천으로서 좀 더 고전적인 시학의 개념을 탐구하였지만, 분절화와 모호성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많은 시적 다큐멘터리의 두드러진 특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설명적 양식 (expository mode)

설명적 양식은 세계의 단편들을 미학적‧시적 틀보다는 수사적‧논쟁적인 틀로 모은다. 설명적 양식은 어떤 시각을 제시하고 주장을 펼치거나 역사에 대해 상술하는 자막이나 목소리를 통해 관객을 직접적으로 소구한다. ‘신(권위자)의 목소리’라는 전통은 전문적인 남성 목소리에 의한 해설이었고, 이는 설명적 양식을 보증하는 특징이었다. 이렇듯 설명적 다큐는 정보 제공의 논리를 말로 전달하는 데 의존한다. 반대로 이미지가 보조 역할을 담당한다. 전형적으로 해설은 그에 수반되는 역사 세계의 이미지들과 뚜렷이 구분되어 명확하게 제시된다. 즉, 해설은 이미지를 조직하며 그 이미지를 일종의 자막처럼 이해하게끔 한다. 따라서 해설은 그에 수반되는 이미지보다 더 높은 상위의 질서인 것이다. 


설명적 양식은 객관적이라는 인상과 지지받을 만한 주장이라는 느낌을 강조한다. 보이스 오버 방식의 해설은 글자 그대로 논쟁이나 싸움의 ‘위에’ 있다는 느낌을 준다. 즉, 역사 세계에서 일어나는 행위에 휘말리지 않고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설명적 양식에서의 편집은 주장이나 관점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러한 방식의 편집을 증거제시형 편집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편집에서는 주장의 전개에 도움이 되는 이미지들을 묶어내기 위해 시공간적 연속성을 희생시킬 수도 있다. 설명적인 영화를 찍는 제작자들이 극영화 제작자보다 이미지의 선택과 배치에 있어 더 자유로운 경우가 있다.


설명적 다큐멘터리는 일반화와 광범위한 논법을 촉진시킨다. 즉 이미지들은 특이하고 생생한 느낌보다는 일반적인 논증의 기초가 되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또한 설명적 양식에서는 요점을 간결하고 정확한 말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분석의 경제성을 낳게 된다. 영화 이전에 존재하는 구조 틀 내에서 정보를 전달하거나 지지를 동원하기 위해서는 설명적인 다큐멘터리가 이상적인 양식이다. 

 

관찰자적 양식 (observational mode)

기술의 발전으로, 카메라와 녹음기가 한 장면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고, 일어난 일을 즉시 그대로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시적이거나 설명적인 영화의 제작자가 행하는 모든 형태의 통제는 경험을 기동성 있게 관찰하는 형식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촬영뿐만 아니라 편집 과정에서도 관찰의 정신을 존중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보이스 오버 해설이나 부가적인 음악 및 음향 효과, 중간 자막, 역사적 사건의 재연, 카메라를 위한 행동의 반복, 심지어는 인터뷰도 전혀 없는 영화가 되었다. 영화에서 본 것이 실제 그곳의 모습인 것이다. 제작자가 관찰자 위치로 물러섬으로써 관객의 적극적인 역할수행이 요구된다. 우리는 있는 그 자체로서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관찰자적 양식은 제작자 자신은 인정하지 않는 간접적인 개입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또한 관찰자적인 제작자가 개입할 책임을 갖는 때는 과연 언제인가 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만일 사회적 배우에게 위험을 끼치거나 해를 입히는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관찰자적 영화는 실제 사건이 지속되는 시간의 느낌을 전달하는 힘을 지닌다. 주류 극영화의 극적 속도를 깨뜨리며, 때로는 설명적, 시적 다큐멘터리가 지닌 이미지의 빠른 조합도 거부한다. / ‘현장의’ 카메라라는 존재는 역사 세계 내에 카메라가 존재함을 증거하는 것이다. 이는 밀접하게 그 상황에 개입하고 참여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 또한 실제로는 그렇게 보이도록 구성된 사건들이 마치 자연스레 발생한 일처럼 진행되는 느낌을 준다. ‘가장된 인터뷰’가 그러하다. 한층 더 복잡한 예는, 역사적 기록으로 삼기 위한 사건의 경우이다. 기자 회견은 순전히 관찰자적인 스타일로 촬영될 수 있지만, 이 사건에 카메라라는 존재가 없었더라면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는 관찰을 목적으로 한 카메라가 그곳에 없었더라도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일이 발생했으리라는 전제를 뒤집는 것이다. 


사건이 벌어지는 현장에 있으면서 마치 그곳에 없는 듯, ‘벽 위의 파리(fly on the wall)’인 것처럼 촬영하는 그 기본 행위는 논쟁을 유발시킨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카메라가 그곳에 없었을 경우의 상황과 얼마나 같을 것이며, 만일 제작자의 존재가 보다 쉽게 인지되는 경우와는 또 얼마나 다를 것인가. 이러한 논쟁은 영화에 대한 신비감과 불안감을 지속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