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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방송 이론 및 비평/영화의 이해

<영화이론> : 피부와 접촉으로서의 영화

<영화이론>: 영화는 육체와 어떤 관계인가?

 

토마스 맬새서 ‧ 말테 하게너의 저작 <영화이론>은 영화는 육체와 어떤 관계인가?를 묻고 있다그중 5장 피부와 접촉으로서의 영화는 피부와 접촉의 경험으로 영화를 파악하고 분석한 이론을 소개한다

 

저자는 본격적인 챕터에 들어가기에 앞서영화 <크래쉬>(US, 2004, 폴 해기스)의 장면을 서술한다이 영화가 그려내는 모습은 소통의 불가능성뿐 아니라인종주의와 인종적 편견을 다루면서 피부와 접촉의 패러다임을 보여준다. 영화 속 인물들은 반복해서 진정한 접촉과 타인의 내면에 도달하려는 시도를 하지만이런 육체적·감성적·촉각적 소통의 시도는 마치 아무것도 뚫고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은 피부의 표면에서 반복적으로 실패한다실패의 이유는 피부가 육체의 중립적 포장지이상이기 때문이다피부는 문화적으로의미론적으로 상호 행위와 커뮤니케이션의 표면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오랜 기간 동안 영화 이론을 주도한 것은 우리가 앞 장에서 살펴본 바 있는 시각 중심 패러다임이다하지만 이 이론들이 주장하는 눈/시선의 배치는 나름의 해결 불가성을 내포하고 있다. 5장에서 소개할 이론은 시각 영역을 부정한다기보다 감각의 동시성을 함께 고려하는 입장이다대표적인 이론가로 비비안 섭책(Vivian Sobchack)을 들 수 있는데그는 시각 중심주의를 이렇게 비판한다현대 영화 이론은 영화가 감각에 호소하는 힘과 육체적물질적 존재로서의 관객을 무시하거나 외면했다.” 이 말은 즉영화 이론가는 관객이 보이는 육체의 반응을 방자하고 점잖지 못한 행동으로 보고비판적 성찰을 방해하는 요소로 본 것이다.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시선에서 접촉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영화학에서만 관찰되는 현상이 아니다보다 넓은 문화적 흐름의 일부로 볼 수 있다대중문화와 고급문화 모두에서 피부는 풍부한 의미론적 연관성을 생산하는 장이 되었다그렇다면 왜 피부가 피부색의 정치적 문제를 넘어서서 그렇게 중요한 의미론적비유적 관련성을 제공하는가?

 

우선 피부는 내부와 외부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고 재분배한다피부는 전환과 불확실의 영역을 지칭하는데피부가 가지는 여러 관계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어디에서 끝날지 알 수 없다또한 피부는 자기만의 독자적 삶을 산다피부는 변덕스럽고우리가 뜻대로 조정할 수 없는 우리의 일부다한편피부는 새롭게 생겨난다피부는 끊임없이 살면서 죽으며그렇게 우리가 보통은 의식하지 못하는 죽음과 재생의 가속화된 순환관계 속에서 존재한다피부는 문화적으로 성별에 따라 다른 특성으로 규정된다여성은 부드럽고 환하며남성은 단단하고 어둡다여성성은 역사적예술적으로 피부를 통해서 특징지어지기 때문에피부가 없는 여인의 묘사는 금기시 된다반면피부가 벗겨진 남자는 종종 긍정적인 자기 해방의 상을 전달하는데 사용된다.

 

/응시의 패러다임이 그 한계에 도달한 것으로 파악하는 근거로 몇몇 영화를 상기해보자이 영화들(<블레이드 러너>, <시계 태엽장치 오렌지>, <마이너리티 리포트>)은 시각의 특권을 매우 뚜렷하고 공공연하게 보여줌으로써 혼성모방 또는 패러디로까지 해석할 수 있다. 그 중, <양들의 침묵>은 시각에서 피부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알리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영화는 시각 중심적 패러다임인 관음증적인 장면을 보여주는 한편버펄로 빌은 자신을 타인의 피부로 치장하려는 병리학적 욕망에 따라서 행동한다그런 면에서 이 영화에서 피부의 모티브탈피와 봉합성장과 유충화변화와 새로운 고안의 모티브는 눈과 시선의 모티브만큼이나 핵심적인 것이다이로써 <양들의 침묵>은 피부의 패러다임이 눈의 패러다임과 명백하게 대립하며 대결하는경계의 영화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피부/접촉 패러다임은 그 자체로 완전하지 않다이것의 핵심은 대안적인 의제라는 것이다접촉으로의 전환은 결코 감성적인 면으로 진일보한 것이 아니며근본적으로 양가적 성격의 것이다자신을 열고 다른 사람과 접촉하려는 순수한 소망은 결코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이 소망 자체가 내부적 모순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영화 <크래쉬>가 잘 보여주듯이인지 모델로서의 피부/접촉의 가치는 어마어마한 충동치명적인 과다동일화와 자기화더 나아가 인종적 오해와 이해관계의 갈등이지감각기관으로서의 육체를 통한 이해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피부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피부란 그 아래에 본질적인 것즉 살기관또는 정신이 자리하고 있는특별한 표현력을 소유하지 않은 기관이자 용기라고 말할 수 있다하지만 또한 피부 자체가 본질적인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이렇듯 피부는 항상 이중적 의미를 갖고 있다한편으로는 시작과 끝이 없는 무의미한 표면이며다른 한편으로는 육체의 껍질 이상으로 의미론적으로 생산적인 표면이다간단히 이야기해서 피부에 집중하는 입장은 이전 이론보다 스크린과 관객의 관계에서 육체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비록 영화 인지 과정에서 관객이 종종 신체를 잊어버리곤 하지만 신체는 감각적미학적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조건이다. 

 

비비안 섭책은 모리스 메를로 퐁티의 현상학을 접목시키면서 지적 이해와 인지적 능력에 강력한 육체적 요소를 첨가하는 영화 이론을 고안했다섭책은 육체적상호 양식적 인지의 필연성과 내재적 특성을 강조한다이는 어떤 단일 감각도 고립된 채로 기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다양한 감각이 같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섭책과 현상학자들은 타자와 관련해서 동감의 위치를 이중적이며 동시적으로 전유한다. (그들은 타자와 자신의 신체적 경험을 동시적이중적으로 파악하고 분석한다이 과정에서 자신의 신체성에 대한 경험이 우선시되는데신체에 대한 경험이 타자와 어떤 상황에 감정이입할 때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 된다.

 

앞 장에서 소개한 이론들은 분리의 순간을 강조한다이와 반대로 현상학적 접근은 관객과 영화 간의 상호작용연속성전이를 강조한다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있다이론에서 육체를 계속 강조한다고 해서 영화와 관객의 간격이 자동으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간격을 줄이기 위한 예술가와 이론가의 실천이 있어왔다현상학적 패러다임은 1990년대부터 빠른 속도로 발전했으며 자체의 세분화를 이루었다이는 고전영화의 탈 육체화한 인지를 극복하고 의문시했던 20세기 아방가르드 예술가의 실천(라슬로 모호이-너지액션영화인 발리 엑스포트의 <두드림과 접촉의 영화관>, 그리고 앤서니 매컬의 <원추를 그리는 선>)과 장르연구(린다 윌리엄스의 멜로드라마공포영화포르노그래피에 대한 연구바바라 크리드의 어브젝시옹’ 개념) 등이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거리를 둔 외부로부터 신체적이며 직접적인 육체로 이동하면서 영화사가 진행되었다고 개괄한다어쩌면 반대로 이러한 진행이 고전 영화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고전 영화가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관객은 먼저 거리를 두고개별적이며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법을 배워야했다. 넓은 의미에서 접촉의 패러다임에 포함시킬 수 있는 이론적 입장들이 종종 고전적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영화(초기 영화아방가르드후기 고전적 영화)를 다루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로라 마크스는 그의 저서 [영화의 피부]에서 상업적 할리우드 영역 밖에서 생산된 영화와 비디오 작품을 주로 다루며피부는 영화가 자신의 물질성을 통해서인지와 표현된 대상 간의 접촉을 통해서 의미를 만드는 방식을 강조하기 위한 비유이며이는 마치 자신의 눈으로 영화를 접촉하는 것처럼 시각이 스스로 촉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고 주장했다그리고 이를 촉각적 시각성이라 불렀다마크스는 또한 촉각적 인지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는데이 개념에 따르면 눈은 접촉기관으로서 작동하며촉각적 영상이 보다 복잡한 다중 감각인지에 호소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피부의 역할이 단지 영상의 차원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소위 말하는 에세이 영화의 수용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이 영화는 블록버스터 영화와 비교해서 다른 형태의 접촉을 한다작품 접근이 어렵고일반적으로 더 적극적인 수용 태도를 지니는데(이런 상영에는 강연이나 감독과의 대화가 곁들여지기도 한다), 영화의 피부 속으로’ 다양한 관객의 개입을 가능하게 하며이로써 관객과 영화 사이의 접촉과 전이의 상호 과정을 만들어 낸다그렇기에 규범화된 수용 형식을 제공하는 블록버스터와는 대조적인 수용 형태를 띠는 것이다. 

 

접촉의 모티브는 다른 이론 학파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예를 들어하미드 나피시는 영화감독 자신의 이민과 망명에서 기인한 타자로서의 경험뿐만 아니라타자성을 제작 방식의 일부로서 보여주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악센트가 있는 영화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이는 제도 기관과의 대립이 아니라제도 기관의 틈새 공간’ 안에서 생산된다망명 중이거나 이민 경험이 있는 감독들이 만든 이러한 영화의 특징은 그들의 사적이며 개인적인 근원을 드러내기 위해서 비시각적촉각적후각적 이미지와 기억을 전면에 부각시킨다촉각적 시각이다시각적인 것감추어진 것간접적인 것촉각적인 것 사이의 긴장은 기억의 층위를 활성화하는데 기여하거나과거의 경험과 결부된 상실감을 유발한다여기에서 인류학적 영화와 후기 식민주의 영화 이론의 넓은 적용 범위와 다양한 사용 가능성 및 기능이 생겨난다. 그 첫 번째 물결은 재현 역사와 소수자 그룹의 전략에 핵심이 맞추어져 있었고, 보다 최근의 비평계는 지역적 정착과 전 지구적 발전의 적용에 관심을 보였다이런 연구는 또한 저항적 독해지역적 범세계화텍스트 밀렵과 같은 개념에 실질적 기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고전 이론의 대표자로 간주되는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의 이론에도 영화와 관객 간의 관계를 시각적인 것보다 육체적현상학적 특성으로 지시하기도 한다크라카우어는 비육체화 된 눈과 객체화된 시점보다 물질세계 안에서 육체의 얽힘을 강조하기도 한다크라카우어는 그렇다면 우리가 원하는 것은 현실을 손가락 끝으로만 만지는 것이 아니라현실을 붙잡고 현실과 악수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토마스 엘새서 ‧ 말테 하게너 <영화이론> 요약 발제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