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드라마와 모더니티 - 의미

오늘날 멜로드라마란 용어는 통상 주정주의와 감상성의 음역을 강조하는 일련의 하위장르를 언급할 때 쓰인다. 이것은 초창기 영화산업에서 통용되던 일반적인 의미라고는 할 수 없다. 멜로드라마라는 단어가 처음 쓰이게 된 것은 1910년 ‘눈물 쏙 빼는 드라마’라는 제목의 잡지 기사가 나왔을때였는데, 그 기사는 여성들의 눈물을 쥐어짜는 연극을 화제로 한 것이다.

 

앨런 데일은 “가슴을 찢어지게 만드는 드라마는 여성들의 사랑-비애에 대한 갈증”을 채워준다고 말하며 “결혼이나 그것의 다양한 변주들은 여성들의 삶에서 가장 큰 요소이기 때문에 여성들은 그것을 연기하거나, 불가능하게 만들거나, 혹은 엄청난 투쟁의 결과로 제공하는 수심 가득한 이야기에 숨죽여 관심을 갖는다.”고 했다. ‘눈물 쏙 빼는 드라마’의 어디에도 멜로드라마라는 말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 용어가 주로 함축하는 의미가 세기 전환기 이후 몇십 년간 변화했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이것은 멜로드라마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에 있어 감상적인 면은 다른 양상들에 의해 다소 가려졌을 수도 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멜로드라마를 정의하려고 할 때 근본적 토대를 발견해내가는 방법을 주로 사용. 멜로드라마와 가장자주 관련되는 근본요소는 아마도 과잉이라는 용어로 요약될 수 있는, 어떤 ‘지나친’ 혹은 ‘과장된’ 특성일 것이다. 예로 들어, 1950년대 서크의 가족 맬로드라마는 미장센이 눈에 뜨게 현란한 색상들로 흠뻑 물들어져 있고, 너무나 많은 가구와 수많은 거울들로 채워쳐 있으며, 종종 ‘지나치게 상징적’이고 지나치게 노골적인 성적 암시들로 과잉 규정된다.

 

멜로드라마와 표현주의적 과잉의 연관성에 대한 기본적 생각은 널리 받아들여진다. 멜로드라마가 감정 과잉을 두드러지게 드러낸다는 것은 명백하다. 할리우드 멜로드라마는 히스테리나 신경쇠약으로 쓰러지기 직전의 인물들, 혹은 적어도 극도의 감정적 속박으로 고통받는 인물들로 넘쳐난다. 고전적 멜로드라마는-참으로 악질적인 악당이 흠 없이 지고지순한 영혼을 괴롭히는 것에 기초한 멜로드라마-악인의 증오, 시기, 질투, 앙심, 악의를 표현할 때 감정 과잉을 극적으로 그려낸다. 전통적으로는 특히 무대 멜로드라마에서 이런 감정들은 과잉된 음색을 더욱 강조하는 배우의 전형화된 ‘과장 연기’ 양식을 통해 전달된다. 

 

멜로드라마는 또한 관객들의 마음속에서 느끼는 반응으로부터 다양한 종류의 과잉을 이끌어낸다. 멜로드라마의 과잉은 몸, 또는 육체적 반응에 대한 문제다. 최루성이란 용어는 강렬한 감정이라는 것이 사실상 육체적 감동, 압도적인 느낌이라는 생각을 강조하는 것이다. 멜로드라마는 파토스의 통렬한 감정에다 동요 감정을 덧씌움으로써 풍부해진다. 예로 아찔한 서스펜스가 만들어내는 육체적이고 노골적인 스릴이 있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이창> . 눈 앞에 들이닥칠 위험을 인지하지 못한 주인공, 아님 사선에서 펼쳐지는 구출 레이스의 연속 장면. 감정과잉을 만들기 위해 고안되었다. 

 

멜로드라마는 다른 흥분도 유발한다. 극단적인 도덕적 불의를 목격할때의 흥분, 비탄의 감정과 사악한 힘이 약자를 괴롭히는 것을 볼 때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끓어오르는 동요와 격분 등이 그것이다. 여기다 맹렬한 증오로 인해 생겨나는 격한 감동적인 사건을 덧붙인다. 무대 멜로드라마에서 관객이 악당을 향해있는 솔직한 증오, 혐오, 혹은 경멸을 쏟아낼 카타르시스적 쾌감을 선사했다. 너무 격한 미움을 사는 악당이 완전히 무력해지는 것을 보는 희열이 있기에, 이런 의미에서 멜로드라마는 일종의 원초적 피의 욕망을 일으키고, 그것의 도덕적 정당성을 인정하도록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멜로드라마와 군중의 제휴

 

과잉과 함께 멜로드라마의 본질적 핵심으로 간주할 개념이 있다. 바로 멜로드라마의 핵심에 있는 ‘상황’이라는 요소이다.(레아 제이콥스), 상황: 극중 인물들이 강력한 새로운 주변환경에 맞닥뜨리면서 관중들이 고조된 극적 긴장을 맛보게 되는, 순간적으로 내러티브 액션을 저지시키는 인상적이고 자극적인 사건으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상황은 종종 깜짝 놀랄 반전, 예기치 못한 상황의 전개는 극을 난국, 주인공이 딜레마나 막다른 골목에 직면할 때 야기되는 순간적 마비 상태로 이끈다. 멜로드라마 고유의 특징인 ‘상황’의 중요성은 따옴표의 빈도수만 봐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항상 먼저 주목하는 것은 극적 상황이다. 그들은 눈앞에서 뭔가 벌어지기를 학수고대한다. 감정이 일어나고 피가 들끓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따라서 멜로드라마에는 터무니없이 엄청난 상황이 존재하게 된다. 

 

상황이란 개념은 확실히 수많은 멜로드라마적인 요소에 적용 가능할뿐더러 멜로드라마를 검토하는 데 있어 유익한 개념적 렌즈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혹자는 그것이 멜로드라마를 본질적으로 정의하는 요소로 일반화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할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문제는 그것이 매우 폭넓고 순응적인 개념이라는 것과, 진정한 의미의 ‘상황’과 ‘평범한’ 수준의 드라마틱한 사건 사이의 경계가 다소 모호하다는 것이다. 혹자는 상황이 다른 많은 이야기 또한 그것을 근간으로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이런 이견에 대해서, 멜로드라마의 ‘상황’은 실로 그 강렬함에 있어 질적 차이가 있다고 대답할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더 어려운 문제는 ‘상황’이 모든 멜로드라마의 필수 구성요소냐 아니냐의 여부이다. 여러 질문들.

 

제이콥스는 ‘상황’이란 개념을 고전적 멜로드라마뿐 아니라 할리우드 멜로드라마와도 연관시킬 필요성을 느꼈다. 그녀는 할리우드 멜로드라마의 여주인공들이 그 특성상 자신들의 삶에서 의미 있고 긍정적인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방해하는 승산 없는 딜레마에 빠지는 것에 연루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멜로드라마는 인물을 함정에 빠뜨린 뒤 그들이 행동에 착수하거나 결정하기 어렵게 만들고, 또 어떤 목표를 향해 즉시 행동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극단적 환경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 

 

할리우드 멜로드라마는 역경의 조건이 플롯전체를 관통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상황’의 정의는 대체로 ‘스릴’-고도로 집약된 네러티브적 흥분-과 같은 의미였다가 시나리오 전부를 일컫는 의미로 은근슬쩍 옮겨가는 듯하다. 고전적 멜로드라마와 할리우드 멜로드라마(좀더 일반적이고, 개인사에 긴 시기를 아우르는 경향이 있음, 계속 스릴을 유지, 강렬한 클라이맥스적 곤경상황이 아니다.)에서 다루는 위기들은 ‘상황적’으로 다르다. 상황이란 개념이 모든 멜로드라마를 연관시키는 본질적 요소, 혹은 공통분모로 기능할 수 있는지 여부는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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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말할 것도 없이 여러 측면에서 멜로드라마는 반리얼리즘적이다. 그래서 비평가들은 지치지도 않고 그것을 ‘화려한 거짓 삶’ ‘진정한 리얼리즘의 부재’ 등으로 조롱해왔던 것이다.  여기서 리얼리즘은 근본적으로 ‘자연주의’-완전히 성장한 심리적으로 다차원적인 ‘리얼한’ 인물들이 ‘실제’ 상황에서 경험하는 것들을 그려내려고 노력하면서 매일같이 일어나는 일상적 현실을 묘사하는 –와 유사한 것을 지칭하는 것이리라. 비평가들의 많은 비판. 대략. 인물 행동도 완전히 괴상하리만치 부적합하다. 정신병원에서나 볼법한 열광적인 행동들. 현실을 캐리커처 수준으로 과장하고 왜곡시키는 불량 렌즈을 통해 인생을 바라본다.

 

2.

 

이러한 배경에서, 아이러니하게 세기 전환기 즈음의 멜로드라마가 종종 ‘리얼리즘유의 희곡’으로 불렸다. 니콜라스 바르닥은 ‘낭만적 리얼리즘’이란 용어를 제안하는데, 그것은 차마 믿기 어려운 특이한 광경들을 믿을 수 있게끔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대체로 멜로드라마는 가로등, 시끄러운 소방차, 혹은 가짜 폭풍을 위해 삶을 등한시한다. 리얼한 소방차와 리얼하지 않은 남녀들은 까다로운 이들에겐 전혀 어필하지 못한다.” 자연주의 지지자들에게 스펙터클한 디제시스적 리얼리즘은 단지 겉핡기 식의 피상적인 리얼리즘일 뿐이었다.

 

3.

 

그렇지만 다수의 평론들은 멜로드라마가 그 이면에 일종의 심원한 리얼리즘이 내재되어 있는 장르라고 변호하기도 한다. 토머스 엘새서 “그 상황과 정서가 비록 핍진성의 모든 범주로부터 벗어나 있고 실제 삶의 어떤 것과도 닮은 구석이라곤 없지만, 그 구조는 나름대로의 삶과 진실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리얼리즘의 세 번째 개념화?는 플라톤 철학의 전통과 특히 마르크스 미학의 전제, 즉 진정한 리얼리티는 표면적 외관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공유한다. 그것은 오직 더 깊은 층위, 표면적 현상을 지배하는 근원적 힘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경험에 있어 중요하고 근원적인 차원들을 폭로하는 멜로드라마의 능력을 가리킨다. 멜로드라마는 우리 모두의 깊숙한 (혹은 그리 깊지 않은) 곳에 내재되어 있는 강렬한 사랑과 증오, 과장된 열정들을 남김없이 표현함으로써 억압을 극복했다. 

에릭 벤틀리. ‘멜로드라마적 시각은 어떤 의미에선 지극히 정상적이다. 허풍스러운 제스처와 찌푸린 표정, 그리고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멜로드라마의 연기는 우리들의 꿈을 과장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복제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멜로드라마는 꿈같은 갊의 자연주의이다. 멜로드라마는 과장이 아니라 제약이 없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꿈의해석-신경증 환자들은 아이들처럼 자기부모에 대한 애증을 증폭된 감정으로 드러낸다. 우리 모두 갖고 있는 것은 그 증폭된 감정이다.’

 

4. 

 

다른 맥락에서 멜로드라마는 인간 조건의 근원인 실존적 진실을 드러낸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클레이턴 해밀턴-비극과 희극에서는 모두 인물들이 플롯을 지배하는 반면, 멜로드라마에서는 우발적 사건들이 캐릭터를 결정하고 지배한다. 삶은 빈번이 비극적이라기보다 멜로드라마적이다. 우리 삶의 많은 부분, 사실 단연 대부분은 인과관계에 의해서라기보다 예기치 않게 일어난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합당한 이유도 없이, 우연의 물결을 타고 우리에게 떠내려온다. 

'우리는 모두 궁극적으로 우연이라는 종잡을 수 없는 힘에 의해 다스려진다. 우리 모두는 우연의 물결 위를 떠돌아다니는 표류물이다. 멜로드라마가 재현하려는 것은 바로 이러한 불변의 진리, 즉 인생의 중대사에 있어서의 우연의 연속성과, 인물에 미치는 우연성의 필연적인 영향력이다.' 즉 인생의 중대사에 있어서의 우연의 영속성과, 인물에 미치는 우연성의 필연적인 영향력이다. 인간에 대한 비평을 완결짓기 위해서는 언제나 멜로드라마에 의존해야 한다.

멜로드라마가 드라마틱한 양식으로 존속해온 이유는 그것이 중대한 실존적 질실, 즉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삶의 모습- 다시 말해 우리는 모두 궁극적으로 ‘우연’이라는 종잡을 수 없는 힘에 의해 다스려진다-을 포착하면서, 근본적인 의미에서 ‘삶의 진실’을 표현해내는 데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5.

 

우연과 불연속의 보편적인 힘은 형이상학적으로 변치 않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또한 사회사적 궤도와 함께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모더니티, 즉 문화적, 인간적 불연속으로 정의되는 시기가 부상하는 동아 거대한 모습을 드러냈고, 멜로드라마의 핵심관객이었던 노동계층과 특수한 관련성을 갖고 있다.

그 당시 멜로드라마극장에는 직간접적으로 멜로드라마에 익숙한 사람들이 많다. 그 중에는 소방수, 경찰관, 선원들 그리고 위험을 무릅쓴 거래로 생활비를 버는 사람들이 있다. 그 건물이 들어서 있는 거리에는 일상의 멜로드라마가 펼쳐진다. 무대만큼 완결성을 지니진 못하지만, 범죄, 술주정, 소름 끼치는 악행의 멜로드라마들이. 그런 이들의 삶은 멜로드라마적인 것에 엄청난 현실성을 부여한다. 

아이러니하게 선정주의는 실제로 리얼리즘을 상당히 내포한다. 멜로드라마가 그려내는 사건들은 비록 느슨하기 짝이 없을지라도 노동계층의 생활 하면 떠오르는 육체성, 위태로움, 그리고 취약성과 어느정도는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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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유혈적 멜로드라마-스펙터클한 디제시스적 리얼리즘의 멜로드라마-와 할리우드의 모성적 가족 멜로드라마, 이 둘만큼 더 대조적인 것은 없다. 가족 멜로드라마의 모든 것이 ‘내부’-‘가정’과 ‘마음’이라는 내면 공간에 집중함으로써 두 배로 ‘내부적’인 구분 안에서-에서 일어나는 방식으로 묘사된다면, 선정적 멜로드라마는 그것의 외적 표현, 즉 모든 것이 외부에서 일어나야만 한다는 고집스러움으로 특징지어진다. 선정적 멜로드라마는 악행과 덕행, 용맹성을 노골적으로 배치하고 분명히 선언함으로써 심리에 형체를 부여했다. 

 

두 멜로드라마의 대비가 시사하듯, 장르의 핵심적인 구성요소들이 상이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둘은 그 어떤 요소도 공유하지 않지만 각기 멜로드라마라는 명칭이 용납된다. 전에 말한 다섯 요소들이 전부 결합할 수도 잇지만, 일반적으로는 몇 가지 요소들로 결합되어 멜로드라마를 형성한다. 스튜디오 시스템 시대의 할리우드 멜로드라마는 대개 파토스와 감정의 극대화라는 두 가지 기본 요소만을 얽히게 만들었다. 하지만 무대의 멜로드라마에서 강조되었던 선악의 도덕적 양극화가 결여되어 있다. 할리우드 멜로드라마는 선량하고 사악한 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투보다는, 둘 혹은 그 이상의 도덕적으로 선량한 인물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바가 근본적으로 양립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생기는 도덕적 이율배반에 기인하는 파토스에 치중했다. 예)서크의 <삶의 모방> 두가지 중 하나만 선택해야만 하는 파토스에 휩쓸리게 만든다. 프로폐셔널한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가정 내 엄마로 존재하는 것과 상충. 

 

대조적으로 액션 중심의 멜로드라마는 종종 이러한 공식을 뒤집는다. <폴린의 위기> 선량하기 그지없지만 결코 애처롭지 않은 대담하고 기운 센 여주인공인들이 극악무도한 악당들에게 대항하는 영화가 있다. 이것은 파토스로 해석되지 않는다. 악당들이 주인공들을 유괴하거나 고문하고 고통스럽게 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고통이 주인공들의 용감함과 회복력을 두드러지게 하는데 기여한다면 진정한 피해자로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는 허약함이나 연민이 암시되지 않는다. 

 

윌리엄스는 기민하게도 파토스와 액션은 도덕적 명료함을 확고히 한다는 의미에서 둘 다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 둘 사이의 변증법이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본다. 그러나 필자는 파토스와 액션, 이 둘이 통합되는 것이 필요적이라는 주장은 과장이라고 생각한다. 제임스 본드의 액션 스릴러만 떠올려도, 정통 파토스라고 불릴만한 그 어떤 것도 유도해내지 못한다. 

우리는 자신의 잘못이나 행동과 무관하게 고통을 겪어야 하는 무력한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그러나 만일 피해자가 고난, 학대, 처벌, 그리고 심지어 죽음의 방식으로 자발적 위험에 맞선다거나 회복, 보복, 혹은 칭송의 가능성을 만드는 불굴의 의지나 충분한 대처능력, 노련함을 보여주는 경우라면 파토스를 일으킬 수 없고, 오히려 경외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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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토스 없는 멜로드라마가 있을 수 있듯이, 멜로드라마 없는 파토스 역시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파토스를 유도하는 내러티브가 멜로드라마에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비스콘티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죽음을 앞둔 한 사내가 젊음과 아름다움, 실현 불가능한 성욕에 대한 열망, 그리고 그것의 상실을 애도하는데, 특히 그로데스크할 뿐만 아니라 성공적이지 않은 차림새로 자신의 쇠락을 부인하려고 애쓰는 마지막 장면에선, 이보다 더 통렬하고 애처로울 수 없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파토스 주변을 돌고 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로드라마의 장르로 분류될지는 의심스럽다. 왜 멜로드라마가 아닌가? 답하기 어렵다. 

 

1. 어느정도 더크 보가드의 자연주의적 연기 스타일과 연관되어 있을지 모른다. 그의 감정표현은 그의 상황에 비해 과하거나 지나쳐보이지 않는다. 

 

2. 또 다른 설명은, 캐릭터가 가지는 강박의 보편성을 평가할 수도 있다. 이러한 평론가들한테 멜로드라마의 특질은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선정적인 위기들이 특정한 내러티브적 위치를 뛰어넘어 어떤 광범위한 관련성 없이 관객들의 마음을 빼앗는 것’으로 정의된다. 비극-<베니스의 죽음> 이에 반해 비극은 ‘절대적이고 영구적인 진리의 단면을 드러내는 것’인데 그것은 묘사되는 특정 인물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와 관련되는 것이다. 하지만 즉각 납득할 수 있진 않다. 왜냐하면 수많은 가정들(인간본성의 보편성, 진리라고 불리는 것의 존재 등등)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3. 또 가능한 설명은 인물 심리의 복잡성과 관련된다. 멜로드라마의 캐릭터는 ‘총체적’이거나 ‘단정적’이고, 일방적이고 단일화되어 잇으며, 그들을 둘러싼 문제는 외부적 힘으로 야기된다. 이에 반해 비극은 모순적 충동과 책임 사이에서 갈등하고 괴로워하며 ‘분열’되어 있거나 ‘다정적’인 주인공들로 이루어지며, 그들이 겪는 문제들은 그들 내부에서 비롯된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인간의 불가능한 외적 문제(시간의 불가역성 등)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내면의 불안, 공포, 열정, 회의와 대립되는 충동들의 복합적 층위에서 들어난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이 멜로드라마와의 차이를 만든 것은 복잡성, 모호함, 그리고 인물묘사의 정교함일 것이다. <삶의 모방> 또한 그렇다. 사라 제인은 분명 어머니를 사랑하는 딸로서, 또한 인종적 불평등이라는 악덕 시스템에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젊은 여성으로서 느끼는 내부의 상반된 감정들로 번민한다. 근데 <삶의 모방> 같은 영화는 멜로드라마라고 하면서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왜 아닌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