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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방송 이론 및 비평/영화 리뷰

이병일 감독의 <반도의 봄> 리뷰

KMDb <반도의 봄>

이병일의 <반도의 봄>은 영화 <춘향전>을 찍는 메타영화이다. <반도의 봄>에서 중요하게 봐야할 부분은 제작시기즉 일제강점기이다그 당시 <춘향전>은 어떤 의미였는지그리고 영화 속에서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는 이중 언어(일본어-조선어)는 어떤 의미인지시기적 맥락에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의 봄>에서 <춘향전>의 제작 과정은 특정한 의미부여가 있다사실 <춘향전>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시대적인 맥락 가운데에서 재생산되고 있었다일제 강점기에도 책 출판뿐만 아니라연극과 영화로도 수십 차례 만들어졌다. 1923년 일본인 하야카와 고슈(早川孤舟)가 감독한 <춘향전>이 크게 히트하여사극영화의 효시가 되었으며 고전영화 붐이 일어났다이렇듯 일본 제국으로서는 식민지 조선을 표상할 수 절호의 소재가 되었으며조선의 민족주의자들 입장에서는 일본제국의 파시즘적 통치와 검열 속에서 지켜낼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조선적인 것’ 중 하나가 <춘향전>이라는 텍스트였다

 

<춘향전>이 일본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관객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코드(일본어와 가부키)로 전환될 필요가 있으며그것은 그들의 시선에 맞게 가공되었다는 의미에서 본질적으로발명된 식민지적 표상즉 식민지적 엑조티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하지만 장혁주는 자신이 창작한 춘향전이 조선이라는 식민지적 엑조티즘에 영합한 것이 아니고일본에서는 성공한 것이라는 식으로 설명하며이를 이해 못하는 조선 지식인은 뒤틀리고비뚤어진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이러한 태도가 가능한 이유는 일본제국/식민지’ 사이의 문화적 위계질서 가운데에서 자신은 식민지 지식인보다는 상위에 위치하며제국 이데올로기인 내선일체를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이병일 또한 마찬가지였다. <반도의 봄>에서 조선영화인들이 <춘향전>을 찍는다는 설정은 장혁주와 김성민그리고 이병일이 공유하고 있었던 식민지 지식인의 욕망이 표현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반도의 봄>의 이중언어적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물음을 던진다즉 이 영화는 누구를 대상으로 발화하고 있는가지금 남아있는 필름을 보자면조선어 대사 부분에 일본어 자막이 있는 것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이러한 자막의 활용을 통해 봤을 때, <반도의 봄>을 기본적으로 일본어를 사용하는 관객을 대상으로 했다그렇다면 <반도의 봄>이 이중언어적 상황을 묘사함으로써 구현하려는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반도의 봄>은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첫째반도영화주식회사의 창립식에서 사용되는 사장의 연설 및 한 부장의 일본어둘째영일과 감독이 사용하는 일본어셋째안나의 일본어다.

 

사장과 한 부장의 일본어는 식민지 권력 언어로서의 일본어이다많은 경우 한 부장의 묘사 속에서 드러나는데그는 식민 지배의 권력을 대리하는 자로서 상대하는 피식민지인보다 자신이 우위에 서길 바라는 경우 일본어를 사용한다둘째로 영일이나 영화감독이 사용하는 일본어는 식민지 지식인이 사용하는 이중언어적 일본어라고 할 수 있다그들은 식민지 권력과 일반 대중 사이에 위치하는 지식인으로서 그 둘 사이를 매개하는 경우에 일본어를 사용하는 것이다셋째로 안나의 인물상 및 그녀가 사용하는 일본어는 이 영화를 해독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그 당시순정한 남자를 둘러싸고 현모양처형과 모던걸형의 두 여성이 경쟁하여결국 모던걸형 여성은 나쁜 마음을 버리고 갱생하며현모양처형 여성은 남성의 사랑을 얻는다는 서사는 매우 흔한 멜로드라마의 패턴이다일본에서 모던걸이란 존재는 단발에 양장을 한 여성으로서서구 문화를 추종하는 여성이다즉 모던걸과 현모양처의 대비를 그린다는 것은서구/일본근대문명/전통도시/농촌 등의 문화적 대비를 그리는 것이며대부분의 대중문화에서 모던걸은 서구문화의 맹목적 추종자로서 배척되는 존재로 그려진다안나는 도쿄에서 댄서를 했다거나한부장과의 내연 관계를 깨고 더 이상 안 만나기로 했어요스스로의 힘으로 강하게 살고 싶어요” 식으로 말하는 자립형 모던걸로 그려진다.

 

일본어와 조선어가 이중언어로 구성될 때는 민족성이 개입되게 된다일본에서 서구/일본의 대비 속에서 맹목적 서구추종을 비판하는 시선을 모던걸 비판으로 표현했다면이번에는 일본/조선의 대비 속에서 근대화의 모델이 되는 위치에 일본을 두는 경우일본어를 사용하는 안나는 일본의 근대 문화를 비판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 안나라는 러시아 여성의 이름에 동양인의 얼굴을 한게다가 일본어는 내이티브 수준으로 자연스러운무국적적인 존재를 그릴 수밖에 없게 된다이것은 일본 제국 내 식민지적 지식인이 가지게 되는 뒤틀림’ 중의 하나이다이러한 인물상은 제국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요소를 회피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영화에서 춘향역이 안나에서 정희로 교체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이것은 (일본인이 일본어로 공연했던 연극 <춘향전>에 대해그것이 조선어로 연기되지 않기에 자연스럽지 못하고 감정적인 흡입력도 약하다는당대의 평을 <반도의 봄>은 안나에서 정희로 춘향역을 교체하는 과정을 통해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무라야마+장혁주는 거의 같지만 전혀 같지 않은’ <춘향전>을 일본인이 받아들일 수 있게 모방하여 표상한 것이다이것을 바라보는 식민지 지식인들은 그러한 식민 담론을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영화 <반도의 봄>은 영화 속 영화의 형태를 빌어 이러한 식민지 표상의 성격을 영상화하고 있다그것이 식민지 지배 상황에 대한 비판까지 포함하고 있지는 않다고 해도식민 표상의 본질적 측면을 영화의 구조 속에서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 문헌 신하경 일제 말기 조선 붐과 식민지 영화인의 욕망 영화 <반도의 봄>을 통해- /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