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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방송 이론 및 비평/영화 리뷰

송 라브렌티 감독의 <고려사람> 리뷰

영화 <고려사람>의 한 장면. 부산국제영화제

 

<고려사람>은 송 라브렌티 감독이 만든 빛바랜 영화이다영화는 카자흐스탄의 풍경을 조용히 비추다가 이국적 외모를 지닌 사람의 인터뷰에 집중하기 시작한다이국적 외모의 그들은 고려어라고 알려진 언어를 사용한다풍경 이후의 인터뷰 사운드는 거의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비록 추측이지만인터뷰의 내용은 주로 가족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개인사 이야기였다.

 

이 영화는 두 가지 요소에 의해 낯설게 다가온다첫째는 제목이고둘째는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이다그 전에 그들의 이국적 외모에 집중해야한다영화 속 그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동양적 외모가 아니라완벽한 이국적 외모의 소유자들이다그런 그들이 <고려사람>이라는 제목의 영화 안에서고려어를 사용하고 있다면 어떤 생각을 가지겠는가아마혼혈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여기서 나는 언어의 힘을 느꼈는데이국적 외모와 낯선 언어를 사용하는 영화를 친숙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그 낯선 언어이다고려어에 드문드문 등장하는 단어들은(엄마아빠연변 등단숨에 그들을 친근하게 만든다그 언어는 그들이 고려인이라는 믿음까지 생기게 한다이런 믿음을 준 감독은 마지막에 한방을 날린다지금까지 인터뷰했던 사람들이 모두 외국인이라는 것을 밝히는 짧은 자막을 보여주며 말이다고려 사람은 없었다는 것이다놀라운 반전을 보고머리가 멍해지는 것과 함께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그럼 감독은 왜 제목을 <고려사람>이라고 했는가.’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고려어를 말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함경도 지역의 기근으로 인해중국과 러시아를 넘어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한 민족이동의 역사가 이 영화의 콘텍스트이다그 당시소련의 집단농사로 같이 일을 하며 고려어를 공유했다는 것이다이런 역사 속에서 우리는 수난과 극복의 역사를 느낀다그리고 이런 역사가 아직도 남아있는 현재를 되돌아본다.

 

<고려사람>이라는 제목에서 말해주듯이아마 감독은 의도한대로 관객을 속였을 것이다이 의도는 다문화에 대해 편협하게 생각하고 있던 기본관념을 해체하는 작업이다영화를 본 후우리는 세계를 어떻게 봐야하는지 혼란스러워한다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다우리는 항상 미국 중심중국 중심유럽 중심 강대국의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봤다그 외의 논의는 무시되거나가볍게 지나칠 뿐이다하지만 이런 변방에 있는 이야기도 논의의 대상이 되어야한다강대국에 의해 매몰되었던 역사라고 해서 무시한다면우리의 주체성을 잃고강대국의 이권에 휘둘릴 뿐이다우리가 <고려사람>이라는 제목에 응답할 책임은 역사에 응답할 책임이 있다는 것과 같다.

 

<고려사람>은 송 라브렌티 감독이 만든 이제는 빛바랜 영화이다하지만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세계에 대한 수많은 함의는 지워지지 않고계속되고 있다세계에 대한 우리의 시선을 뒤집는 단초를 제공하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