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희 감독의 <쇠사슬을 끊어라>는 웨스턴 활극을 표방하는 영화로, 만주활극, 대륙활극, 대륙 만주물이라고 불린다. 이 영화의 내용은 ‘티베트 불상’을 쫓는 3명의 남자와 일본군, 독립군들의 충돌 속에서 진행된다. 세 남자가 만나고, 서로의 갈등을 그린 다음, 배신하는 장면과 구출하는 장면, 그리고 또 다른 갈등이 계속 반복되는 구조다. 마지막, 서로 힘을 합쳐 일본군을 이기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이 세 명의 범법자가 티베트 불상을 쫓는 과정이 그리 특별하지는 않다.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건 다른 부분이다.
내가 주목했던 부분은 ‘연극’이라는 단어이다. 중요한 사건에 들어가기 전 ‘이제 1막이 시작 되는군’라는 식의 추임새를 넣는가 하면 ‘연극’하지 말라는 대사가 나오기도 한다. 또 연극 무대의 막이 오르듯, 허장강의 뺨을 때리면, 댕~ 하며 징소리를 낸다. 즉, 영화는 연극처럼 구성되었으며, 영화 안에서 ‘이것은 꾸며진 극이다.’라는 것을 계속 각인시켜준다. 이렇게 영화를 연극이라는 장치를 사용해서 꾸민 이유는 영화가 만들어내는 판타지에 너무 갇히지 말고,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영화를 주체적으로 파악하라는 것이다. 판타지 속에 숨겨진 <쇠사슬을 끊어라>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먼저, 지리학적 위치로 이야기할 수 있다. <쇠사슬을 끊어라>는 만주를 배경으로 하며, 웨스턴 영화에서 가져온 요소들을 사용한다. 그래서 만주 웨스턴, 혹은 대륙 액션이라고 불린다. 여기서, 영화의 배경이 만주인 몇 가지 이유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세계사적 관점으로 만주라는 지역은 아시아의 ‘서부’였다. 모든 인종이 어우러져 살았으며, 이런 점에서 ‘갈등의 요람’이라 불렸다. 게다가, 만주에 있었던 독립군의 항일운동은 웨스턴 영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런 점이 만주가 가지고 있는 시대적 상황이었다. 그 중에서도 만주의 가장 큰 의미는 저 너머 세계에 대한 판타지였다. 동북아시아에 대한 동경은 당시의 정치 현실로 인해 생겨난,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즉, 만주는 영화가 가지고 있는 저항과 열망의 분위기를 가장 잘 충족하는 최적의 장소인 것이다.
다음은, 영화가 제작될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로 이야기할 수 있다. 이 영화는 70년대 초, 즉 유신의 쇠사슬이 조여오던 시기에 만들어졌다. 박정희 시대의 유신은 국가주의 프로젝트에 합류하기를 강요받는 시대였고, 그 당시의 대륙 액션 영화에서도 주인공들은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독립군의 정체성을 띠며, 국가 통제 근대화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하지만 <쇠사슬을 끊어라>는 달랐다. 영화의 엔딩을 보면, 광활한 대지에 내리쬐는 석양을 향해 세 명의 주인공들은 달려간다. 즉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무법자의 길을 택한 것이다. 이렇게 영화는 식민지시기를 ‘우회적’으로 다루는 방식을 통해 국가주의 프로젝트에 부정적으로 대응한다. 다시 말해, 식민시기를 배경으로 하되 동시대를 다뤘던 것이다.
<쇠사슬을 끊어라>의 판타지는 ‘만주’라는 지리학적 위치와 제작될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살펴봄으로써 진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즉, 이 영화는 유신 시대에 대한 재치 있는 저항 정신으로 읽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여담이지만) 과거의 역사를 배경으로 동시대를 다뤘다는 측면에서, 영화<변호인>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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