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영 감독의 <하녀>는 생각해볼 지점이 많은 영화다. 물질적, 성적 판타지에 대한 지점, 근대의 열망과 그 당시 관객성에 대한 지점, 그리고 페미니즘적인 지점과 그 외의 많은 지점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 여기서는 물질적 판타지와 그로 인한 자본에 대한 페티시즘, 그리고 감독이 여성을 어떻게 묘사했는지를 중심으로 보고자 한다.
물질적 판타지에 대해 얘기해보자. 주인공은 2층의 양옥집에서 생활하며, 신발을 신고 다닌다. 아내는 재봉틀로, 남편은 피아노로 돈을 버는 중산층이며, 부부 중 아내가 돈을 벌어 집을 장만하고, 집에 하녀를 두기로 한다. 남편이 일하는 직장으로 가면, 여공들이 커다란 기계에서 벗어나 피아노 반주에 맞춰 합창을 배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도 그런 집에서 살고 있지 않으며, 복지가 좋은 회사도 많지 않다. 지금도 그렇지 않은데, 당연히 <하녀>가 만들어진 1960년에는 말도 안 돼는 설정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하녀>의 설정을 통해 그 당시의 소망들을 엿볼 수 있다. <하녀>에는 소망 이미지가 많은 부분 투영된다. 이런 소망 이미지가 근대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영화는 근대성의 문에 도달하려 한다.
앞서 말한 소망이미지는 자본주의에 대한 욕망으로 얘기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욕망은 자본을 향한 페티시즘으로 연결된다. 페티시즘은 도착의 일종이며, 본래 어떠한 물건에 초자연적인 힘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이를 숭배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맑스의 경우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 화폐가 사람들을 지배하는 현상을 설명할 때 사용한 원초적 신앙의 형태라고 말한다. 자본이 종교, 신으로 군림하며, 그럼으로써 주객의 위치가 전도된다. 다시 말해, 사람이 자본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사람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하녀>에서는 자본의 탐욕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아내의 재봉틀로 번 돈으로 2층 양옥집을 샀다는 내용과 이러한 돈으로 하녀를 부린다는 점에서, 사람을 지배한 자본은 탐욕적으로 순환한다. 특히 남성 주인공과 여성 주인공을 비교해 봤을 때, 남성은 피아노를 치는 모습으로 재현(자본의 구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느낌)되는 반면, (재봉틀로 돈을 버는) ‘아내’, ‘하녀’, ‘여공’으로 대표되는 여성들은 단순노동을 하며, 자본의 착취구조의 둘레 속에 있다는 점은 눈여겨 볼만하다.
김기영 감독이 자본의 페티시즘과 근대성에 속해 있는 여성을 어떻게 묘사했는지 볼 때, 김소영 교수는 영화 속 여성의 위치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여성들은 과거의 잔재로, 혹은 인간성에 잠복해 있는 악마성을 환기시키는 자로 근대성의 반대쪽에 서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근대성과 전통 양자의 희생자로 이중적으로 삭제되어 있는 것인가?’ <하녀>에서 하녀는 근대적이면서, 또한 전근대적이기도 하다. 단순히 남성에게 순응하는 여성이 아닌 남성을 쟁취하는 적극적인 여성으로 그려지는 것은 근대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욕망이 극에 달하며 위험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처벌을 받으며 전근대성을 부각한다. 하녀는 근대와 전근대의 충돌이자 또한 이중적으로 삭제되어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하녀는 끊임없이 근대적인 것을 배우려는 여성이다. 피아노를 배우려고 하고, 나중에는 생활방식까지 배우려 한다. 하지만 그녀의 계급 상승은 막혀있고,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성적 욕망의 지점이다. 계급상승을 위해, 남성을 쟁취하기 위해 성적 욕망을 선택하며, 그녀는 마치 악마처럼,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인다. 악마의 이미지가 극에 달하면서, 쥐약을 타 아들을 죽인다. 특히 여공을 칼로 찌르는 장면은 마치 히치콕의 영화 <싸이코>(하녀 이후에 나왔지만)를 연상시킨다. 이렇게 하녀는 근대의 열망에서 배재된다.
근대가 고정화되면서 주변부로 밀려는 역사가 반드시 존재한다. 근대는 모두 같은 양식을 공유하지는 않는다. 영화는 그 주변부를 바라보는 매체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녀>는 근대 안에서 경험하는 여러 장들을 보여주며, 역사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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