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김>과 <황홀경>은 한국영화사를 영상이라는 매체로 기술한다. 두 영화는 한국영화사를 영화로 기술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기술하는 방식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먼저, 장선우 감독의 <씻김>은 영화가 나온 지 100주년을 기념으로 만든 영화이다. 한국에 영화가 들어온 걸로 따지면, 76년이라는 시간동안 어떤 영화가 만들어졌는지를 알 수 있다. 영화의 시작은 동학농민운동의 발원지인 ‘부안’이다. 그 장소에서 일어난 한국사. 우리의 한 많은 역사를 영화로 표현한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인서트로 대입하며, 한국사와 함께 한국영화사를 소개한다. 영화는 부안에서 광주로 이동한다. 그곳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있었고, 그 당시 극장에 대한 인터뷰를 보여준다. 또한 한국의 역사, 유신과 군부, 그리고 검열이 있었다. 이런 방식의 영화의 진행은 각 감독의 인터뷰와 감독의 영화를 보여주며, 굴곡 많은 한국사와 한국영화사를 돌아보게 한다. <씻김>은 이런 한 많고, 굴곡 많은 한국사, 한국영화사를 제의의 형식을 빌어서 씻김굿을 벌인다. 씻김굿은 죽은 이의 부정을 깨끗이 씻어 주어 극락으로 보내는 전라남도 지방의 굿으로, 영화의 제목이 <씻김>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씻김>에서 역사성 이외에 한 가지 더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 영화가 만들어진 시기 1995년이다. 후반 부분 김홍준 감독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인터뷰의 내용은 영화시장에 대기업이 진출한 것에 대해 ‘대기업이 진출해서 영화사에서 성공한 사례를 보지 못했다’며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95년 이후로, 그니까 <씻김>이 만들어진 시기로부터 약 20년이 흘렀다. 그동안 대기업은 멀티플렉스 상영관으로 영화시장을 장악했다. 영화시장 안에서 자본은 신이 되었다. 영화의 역사성 안에서 대기업의 영화시장 진출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느낀 지점이다. 우리는 <씻김>이 만들어진 후 20년 동안 무엇을 되돌아봐야하는가 고민해본다. 우리는 또 어떤 씻김굿으로 제의를 벌어야할지 말이다.
하지만 <씻김>을 보면서 아쉬웠던 점이 있다. 바로 ‘관객들은 어떻게 영화를 받아들였는가.’에 대한 논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정 감독의 <황홀경>은 다른 방식으로 한국영화사를 기술하며, 이 부분에 대한 논의까지 포함시킨다. <황홀경>은 그간 남성 중심적 영화역사 바깥에 있던 여성들을 보여준다. 김정 감독은 “한국영화사를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기존의 한국영화 관련 다큐멘터리가 남성 중심 시작으로만 되어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며 여성의 눈으로 보는 한국 영화를 담고 싶었다고 밝혔다. 영화는 인터뷰와 함께 영화 클립들을 몽타주, 콜라주하는 방식을 통해 여성의 시각으로 한국영화사를 기술한다.
그 당시 급진적이고, 파격적이었던 <자유부인>과 <하녀>를 몽타주하며, <황홀경>은 여성관객을 재조명하는 작업부터 시작한다. 여성관객에게는 <미워도 다시 한 번> 영화를 어떻게 봤냐는 질문이 주를 이룬다. 어떤 분은 재개봉하면 또 보고 또 보고 하는 자신의 영화 보는 경험을, 또 어떤 분은 텐트를 치고 봤다는 경험 그리고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보면서 많이 울었다는 이야기를 주로 한다. 그 당시 여성들에게 호러와 멜로가 인기가 있었다는 것과 함께, 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가 매우 급진적, 도전적인 일이었음을 상기시켜준다.
<황홀경>의 한국영화사 서술 방식은 시기별이 아니라, 주제별로 묶여진다. <불어라 바람>, ‘내이름은 화녀’, ‘여귀, 돌아오다’, ‘그녀들은 어디로 가는가? (여자, 여자를 만나다.)’, <그들만의 전성시대> ‘60-70년대 조국의 근대화에 울고 있는 한 소녀 ; 여공, 식모, 호스테스’. ‘한국형 블록버스터와 멀티플렉스의 시대, 사라지는 남한여성’, <여성장의 탄생>. 각 대 주제와 소주제만 살펴봐도, 그 안에 어떤 영화들을 다루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이렇게 주제별로 묶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최소한의 시기별 구조는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안에서 다루고 있는 영화 클립의 몽타주는 파격적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흥미로운 점은 과거와 현재의 조합이다. 과거의 여성 배우에게 최근의 한국영화에서 좋아하는 장면을 물어보고, 현재의 여성배우(배두나)에게는 과거의 한국영화에서 좋아하는 장면을 얘기하는 구성은 과거와 현재의 조합 속에 여성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를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황홀경>은 다시 묻는다. 과거가 되어버린 한국영화의 중흥기에 초대받지 못한 남한여성들, 소피, 파이란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마지막 장면, 몽환적인 분위기의 음악과 함께, 푸른 물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나체의 여성을 보여준다. 부드럽지 않은 화면은 매우 끊기고, 흔들린다. 여성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윤관과 몸짓만 어렴풋이 보일뿐이다. 즉 그들의 자유로움만 보인다. 언제쯤 이런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지. 영화는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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